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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설레임, 잔잔한 여운. 영화 런치박스

by Sihyo 2021.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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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브런치에 쓴 글을 옮겼습니다.

 

 

 

늦은 밤.

오랜만에 인도영화를 찾아봤습니다.

인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잠시 살다 온 곳이라 그런지 

공기가 차가워지는 가을밤이 되면 인도 음식과 영화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도 영화 '런치박스'를 봤습니다.

 

+++

이번 브런치 글에 영화 런치박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스포일러를 피하는 분들은 꼭 영화 다 보고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

+++

 

 

런치박스, 도시락

영화 배경인 인도, 뭄바이는 도시락 배달 시스템이 기막힐 정도로 유명합니다.

인도에서는 집에서 만든 음식이 사회적으로 높은 대접을 받는데요. 

종교도 다양하고 인도 요리 특성상 제대로 맛을 내려면 소량으로 요리를 해야 하고, 밖에서는 싸고 위생적인 시장을 찾기가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뭄바이 직장인들이 도시락 배달로 집에서 만든 점심을 받고 식사를 하는 문화와 배달 시스템은 자연스럽게 성장했습니다.

 

 

도시락 배달부, 다바왈라.

인도에서 도시락 배달부를 다바왈라라고 합니다.

다바는 도시락

왈라는 나르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다바왈라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집에서 도시락을 받아와 회사원에게 전달하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 엄청난 시스템이 돌아갑니다.

수많은 다바왈라는 문맹인데요.

도시락 가방에 숫자, 색으로 체계를 만들어 여러 다바왈라를 거쳐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걷고, 자전거를 타고, 손수레를 쓰고, 또 전철을 이용하는 것 말고는 기술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배달 사고는 거의 1,600만 분의 1일 정도로 정확도가 100%에 가깝다고 합니다.

뭄바이는 서울보다 인구밀도도 높고 인구도 많아 복잡한데 여기서 배달 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다니! 놀라울 일입니다.

다바왈라 수천 명이 이렇게 사고 없이 정확하게 배달하는 데는 팀워크가 엄청나고 시간을 잘 지키기 때문입니다.

 

 

No Problem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바로 No Problem입니다. '문제없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죠.

다바왈라도 역시 No Problem이라는 말을 엄청나게 합니다.

먼저 실행했고, 그리고 수만 번 시행착오를 하며 정확도가 높아졌고

그 결과, 경영학에서 연구할 정도가 되었죠.

 

런치박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집에서 만든(도시락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시락 업체들처럼) 따뜻한 밥을 먹인다는 자부심, 그리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다짐으로 다바왈라는 엄청나게 넓고 복잡한 뭄바이에서 열심히 달리고 서로 끈끈하게 에너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도시락 이야기로 길어졌네요.

돌아와서 영화 런치박스 이야기를 할게요.

 

영화 런치박스

 

앞에서 뭄바이에서 정교한 도시락 배달시스템으로 정확성이 100%에 가깝다고 했는데요.

여기 그 1,60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은퇴를 앞둔 회계사 사잔

그리고 집에서 도시락을 만들어 남편에게 보내는 일라

또 사잔의 도시락을 먹는 일라의 남편

사잔과 일라 그리고 일라와 일라 남편 그리고 그녀의 가족, 이웃 이모 그리고 사잔의 부하직원 세이크와 도시락으로 생긴 에피소드를 영화에서 들려줍니다.

 

사잔은 일찍 아내와 사별을 하고 혼자 외롭게 살면서 엄청 고독한 삶을 살면서 정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점심 도시락을 해줄 아내가 없기 때문에 사잔은 집 근처 작은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는데요.

어느 날, 다른 도시락이 도착합니다.

 

 

그 도시락은 바로 

일라가 남편을 위해 만든 점심 도시락이었는데요.

도시락이 바뀔 확률이 그렇게 낮은 이 배달 시스템에서 아무도 모르는 실수로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락

두 도시락이 바뀐 이유는 정말 아무도 모르고 배달을 하는 다바왈라도 모르는데

왜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락이라고 했을까요?

 

그건 바로

사잔이 받는 도시락과 일라가 남편에게 보내는 도시락이 같은 가방이고 도시락 통도 같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인도 회사원의 도시락은 거의 비슷해요.

 

익숙하지만 낯선 도시락을 받은 사잔은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깨끗하게 먹어 돌려보냈는데요.

다 먹은 도시락을 받은 일라는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남편은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도시락이 잘못 보내졌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깨끗하게 또 맛있게 먹어준 모르는 분에게 다음 날에도 맛있는 도시락과 함께 고맙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같이 보냅니다.

 

 

다음 날 도시락을 받은 사잔은 도시락을 먹으며 편지를 발견합니다.

어제와 같이 도시락이 잘못 배달된 것이죠.

샤잔은 먹기 힘들었던 지난 도시락이 아니고 정말 이 세상에서 맛있고 어제와 다른 메뉴인 도시락을 먹게 되었고, 일라가 보낸 짧은 편지를 읽고 답장하면서 영화는 관객을 설레게 만듭니다.

 

지금은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가 있어 편지가 낯설고

조금 전에는 이메일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아 종이 편지가 낯선데

이 영화는 조금 더 과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편지가 익숙합니다.

영화 보시면 알 거예요.

 

 

이렇게 도시락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게 되고

일라는 힘든 결혼 생활에 대해 속을 털어놓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끼셨겠지만

일라는 젊은데, 사잔은 조금 늙었어요. 

영화에서 곧 은퇴할, 한 회사에서 35년 일한 회계사로 나옵니다.

일라는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또 남편이 바람피운 것을 알게 되면서 즐거움을 잃은 아내로 나옵니다.

 

결혼 생활을 먼저 한 사잔은 일라에게 조금씩 결혼 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처음에 설레던 영화의 장면들에서 뭔가 달라진 공기를 느끼게 됩니다.

 

 

이미지 메이커 세이크

사잔의 후임으로 세이크가 오게 되고 

아내와 헤어지고 삶의 의미를 잃었던 편지로 조금 열렸지만, 회사에서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꽉 닫힌 마음을 갖고 있던 사잔은 세이크와 조금씩 시간을 갖게 되면서 밝아집니다.

 

어느 날 일라가 부탄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도시락에 담아 보냈고 사잔은 같이 가자고 답합니다.

이렇게 대화를 하는데 세이크가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편지를 주고받는데 또 편지 내용과는 상관이 없지만

어떻게든 마음 닫힌 사잔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고, 회사를 다니려고 노력하고 또 사잔을 집에 초대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고 

사잔은 세이크의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과 달라진 사람이 됩니다.

 

결국, 사잔과 세이크는 같이 일라의 도시락을 나눠먹는 사이가 되죠.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아내랑 사별했고, 또 새로운 설레는 사랑을 하게 된 사잔은

우연히 세이크에게서 세이크 엄마가 말한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세이크는 고아예요.)

고아인 세이크가 엄마도 없는데, 사잔에게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사잔을 설득해버립니다.

이 말에 사잔은 조금 더 일라에게 가까워집니다.

 

 

기다림

일라와 사잔이 서로 믿게 되고 일라로부터 만나자는 편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일라는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갔고 사잔을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사잔은 결국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운한 감정도 있고, 괘씸하다는 생각을 한 일라는

다음 날 텅 빈 도시락을 보냅니다.

 

텅 빈 도시락을 받은 사잔은 

편지를 쓰죠.

사실 나, 너를 만나러 그곳에 갔고, 그곳에서 너를 멀리서 봤는데 너무 예뻤다.

그런데 난 늙었고 너는 젊고...

그 상황이 두려워서 멀리서만 바라봤다.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를 도시락통에 담아 보냈고

 

도시락과 편지를 받은 일라는 

마음 정리를 했고, 딸과 함께 부탄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사잔에게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는 내용을 쓴 편지를 도시락에 담아 보냅니다.

 

그 도시락과 그 안에 있는 편지를 받은 사잔은 

도시락을 돌려보내는 다바왈라를 찾아가고 따라가며 일라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 시간

부탄으로 떠나는 일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

....

 

 

 

 

머어엉...

 

 

 

그렇게 영화가 끝나버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게 만들면서 끝나다니

이 영화, 인도 특유의 영화처럼 노래와 춤으로 가득 찬 영화가 아니고 

잔잔하면서 모르는 사람 둘이 주고받는 편지로 서로 편해지고 밝아지고 새로운 꿈을 꾸면서 감정을 혼란스럽게 해버렸습니다.

 

 

도시락이란 소재로 시작해 

저는 조금씩 인생과 사랑이 담긴 소소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보는 사람을 설레게 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하면서 끝까지 궁금하게 만든 영화 런치박스의 낯설고 독특한 문법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제겐, 뭔가 프랑스 영화 한 편 본 느낌이 들었죠.

 

영화 주인공 사잔을 역할한 인도의 국민 배우 이르판 칸, 그리고 엄청난 오디션을 합격한 일라를 담당한 님랏 카우르

영화감독은 처음부터 사잔을 이파르 칸이 한다고 생각하고 스토리를 구상했고 인도 국민 배우인 이파르 칸은 자신의 배역을 정말 멋있게 해냈죠.

또 님랏 카우르는 영화 촬영하기 전부터 영화에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실망스럽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일라를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 둘,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탄에서 만났을까요?

아님 부탄 가는 기차에서 만났을까요?

영화에서 멀찍이 바라보며 거리감을 둔 것 말고 사잔과 일라가 만난 것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우리나라도 그렇듯 인도도 변하고 있는 가족 형태, 그리고 식문화를 영화만의 색과 향으로 디테일을 살려냈고,

도시락이라는 독특한 재료로 고민을 녹여내면서 인도 사회까지 보여줍니다.

 

따뜻한 밥

집에서 만든 따뜻한 밥이 그리웠던 사잔과 남편과 멀어지던 일라를 가깝게 해 준 것은 바로 따뜻한 밥이 담긴 도시락이었습니다. 따뜻한 밥을 맛있게 먹었고, 또 깨끗하게 비워진 도시락을 보면서 서로 마음이 열렸고 낯설었지만 가족보다도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하는 모습에 저도 마음이 따뜻해졌는데요.

 

엔딩 없는 엔딩으로 끝나지만 

다 보고 잠깐 생각을 해보니 이 영화 좀 최고인 것 같았습니다.

분명 이 둘은 현실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다바왈라처럼 먼저 행동을 하는 것 대신 자기가 있던 곳에 서서 생각을 했고 카메라는 고민하고 걱정하고 조용해지는 그 순간을 조심스럽게 담아냈는데 장면 장면이 하나 둘 생각나면서 맛있게 먹어서 식당을 나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맛이 그 음식이 생각나는 행복한 순간처럼 영화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낯설지만 조금 이해되는 이야기

알고 있던 인도 영화 구성이 아닌 낯선 인도 영화

독립, 예술 영화 같은 영화 런치박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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